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가리아 제1제국 (문단 편집) === 혼란기 === 3대 칸 [[코르메시]]와 4대 칸 [[세바르]] 시대엔 [[동로마 제국]]과 별다른 갈등을 벌이지 않고 무역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바르가 753년 사망하면서 둘로 왕조가 단절되자, 불가리아는 혼란에 휩싸인다. 불키 가문의 [[코르미소쉬]] 칸은 [[콘스탄티노스 5세]]가 불가리아와의 국경지역을 요새화하자 사절단을 보내 양국의 국경지대에 요새를 세우지 않기로 했던 협약 위반이라고 항의하면서, 공물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콘스탄티노스 5세가 사절단을 추방하자, 756년 대군을 일으켜 트라키아로 진격했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40km 떨어진 아나스타시아 성벽 전투에서 콘스탄티노스 5세가 친히 이끈 동로마군에게 참패하였고, 그 직후 궁정 쿠테타가 일어나면서 피살당했다. 6대 칸 [[비네흐]]는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을 이어갔다. 756년 콘스탄티노스 5세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쳐들어오자 마르첼레에서 응전했으나 참패했고, 자식들을 인질로 바치는 조건으로 평화 협약을 맺었다. 759년 콘스탄티노스 5세가 재차 쳐들어오자 이번에는 리슈카 고개에서 매복 공격을 가해 물리쳤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과 평화 협상을 하려 하다가 전쟁을 지속하고자 했던 귀족들의 반발을 사면서 760년 가족과 함께 피살당했다. 7대 칸 [[텔레츠]]는 즉위 직후 군대를 이끌고 동로마 제국의 국경 지대를 황폐화시켰다. 이에 콘스탄티노스 5세는 763년 6월 16일 800척에 달하는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불가리아로 쳐들어갔다. 텔레츠는 처음엔 20,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산길을 차단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평야 지대에서 회전을 벌이기로 했다. 763년 6월 30일, 양군은 안키알로스 평원에서 맞붙었다. 하루 종일 지속된 격전 끝에 불가리아군이 참패하여 많은 병사가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군의 피해 역시 컸기에, 황제는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수도로 돌아간 뒤 [[개선식]]을 개최했다. 이 일로 신망을 잃은 텔레츠는 정변으로 피살되었다. 그 후 새 칸으로 선임된 [[사빈(불가리아 제1제국)|사빈]]은 비밀리에 동로마 제국과 평화 협상을 이어갔으나, 766년 호전파 귀족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고 인민 회의를 열어 그를 축출하기로 결의했다. 사빈은 즉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망명해 목숨을 건졌다. 사빈을 축출한 귀족들은 우킬 가문의 일원인 [[우모르]]를 9대 칸으로 선임했지만, 40일 만에 우가인 가문의 [[토크투]]와 바얀 형제가 정변을 일으키면서 우모르 역시 피살되었다. 토크투는 새 칸에 즉위했지만, 1년만인 767년 반란군을 피해 달아나던 중 다뉴브 강 북쪽의 어느 숲에서 형제 바얀과 친척들과 함께 피살되었다. 11대 칸에 오른 [[파간(불가리아 제1제국)|파간]]은 콘스탄티노스 5세와 친히 만나서 평화 협상을 성공적으로 하였지만, 황제가 돌연 불가리아 영내로 쳐들어가 약탈을 자행한 뒤 돌아가는 바람에 백성의 신망을 잃었고, 768년 바르나 주변에서 부하들의 배신으로 피살되었다. 12대 칸에 오른 [[텔레리그]]는 774년 [[콘스탄티노스 5세]]를 상대로 일진일퇴를 벌이다가 평화 협약을 맺었다. 그해 말 평화 협약을 파기하고 1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베르치티아(현재의 마케도니아 북부)로 진격했다. 그러나 이 정보는 사전에 황제의 귀에 들어갔고, 콘스탄티노스 5세는 훨씬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불가리아군을 물리쳤다. 황제는 여세를 이어가 불가리아로 쳐들어가려 했지만, 함대가 메셈브리아(현재 네세바르) 인근에서 북풍에 저지되자 어쩔 수 없이 철수했다. 텔레리그는 내부의 배신자가 황제에게 정보를 누설했다고 여기고, 귀순을 하겠다며 불가리아 내에서 도와줄 이를 알려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황제는 그 말을 믿고 알려줬고, 텔레리그는 그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콘스탄티노스 5세는 자신을 속인 그를 응징하려 했지만, 도중에 병사하면서 무위에 그쳤다. 그러나 텔레리그는 777년 궁정 쿠데타로 축출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망명했다. 이렇듯 불가리아는 753년부터 777년까지 24년간 8명의 칸이 교체되는 정국 혼란에 휩싸였고,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하면서 국력이 쇠락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